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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8일 추석 전, 강화도에 다녀왔어요. ^_^
대하가 먹고 싶어서 이전부터 오빠를 졸랐는데 드디어 가게 되었지요 +_+
펜션에 가기 전 근처에 있던 전등사에 들렀어요.
* 전등사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화전호 : 032-937-0125
홈페이지 : http://www.jeondeungsa.org
입장료 : \2,000(성인) / \1,300(청소년) / \1,000(어린이)
매표소가 산 위에 있어서 주차장에서 꽤 많이 올라가야 해요.
저희가 갔을 때는 날씨가 그닥 좋지 않아서;; 대략 난감;;
저희는 정문으로 안가고 다른 문으로 올라갔어요.
올라가는 내내 안내판이 없어서 불안불안 했는데, 올라가다가 매표소 입구 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서 같이 올라가서 안헤매고 잘 다녀왔어요.
표를 끊어 입장하면 관람로가 있는데, 나무로 이렇게 조각해서 안내를 해 주어요.
대부분의 표지판이 이렇게 나와 있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ㅋㅋ
전등사 안에서 처음 만난 윤장대예요. ^_^
이 것을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대요.
그래서 오빠는 이걸 돌려보더라구요. ㅋ
저는 모 종교를 안믿으니까,, 그냥 말았어요 ㅋㅋ
윤장대를 돌려보는 중이예요. 힘든가;;
도착하고 아무것도 못먹어서 배가 고파 ㅜㅠ 점심부터 먹었답니다.
대웅전과 약사전, 범종 등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그 맞은편에 의자가 있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자판기도 있어요. ^_^ 근처에 화장실도 있어서 손씻기도 편하공 ㅋㅋ
점심은 도시락을 싸갔어요.
이 도시락을 싸느라 조금 늦게 출발하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 싸주는 도시락이라 오빠가 좋아했어요.
메뉴는 고구마 경단 ㅋㅋ
만드는 방법은 지식인에 물어봤답니다 ^_^
점심먹은 곳 맞은 편으로 이런 집이 보였어요.
스님들이 살려고 만드는건지, 아님 템플스테이 하려고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갔을 때는 한창 공사중이었어요.
짓는건지 유지보수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못들어가는 곳이었어요. ㅜㅠ
그치만 담장 색깔이 예뻐요.
절에 하나씩은 있는 식수대예요.
저희는 음료수를 점심 먹으면서 먹어서 물은 안먹었는데,,
소원비는 동전을 던저봤어요 ㅋ
큰 돌 가운데 접시 같이 있는데 그 곳에 동전을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나봐요 ㅋㅋ
10원짜리가 마침 4개 있길래;; 오빠랑 2개씩 나눠서 넣기로 했는데,
저만 1개 들어갔어요. +_+
근데 소원을 안빌어서 안이루어지나봐요. ㅋㅋㅋ
이럴 줄 알았으면 취업 잘 되게 해달라 비는건데;;
전등사 범종이예요.
이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모든 문화재가 그렇듯 가까이서 볼 수는 없어요. ㅜㅠ
모라모라 조각되어 있을텐데 모라고 써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_=;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까 왜 제가 찍은 사진과는 다른 모습인지 모르겠어요;;
아마 사진을 잘못 찍었나;; =_=;;
대략 난감;; ㅜㅠ
비석과 함께 동자승이랑 석가모니 인형도 이렇게 있었어요.
다른 절에서는 못 본것 같은데;; (하긴; 워낙에 어디 가본지 오래 되서 =_=;)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귀엽네요. ^_^
차안에 다는 흔들이도 있어요 ㅋㅋ
이 건물은 명부전이예요.
절에는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 하게 생겼는뎁;; =_=;;
전 대웅전이 젤 중요하단 것 밖에 잘 모르겠어요;;
이 건물은 직접 들어갈 수 있는데, 저는 무교라서 패스 했어요;;
제가 막 들어가서 시끄럽게 떠들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ㅋㅋ
언젠가 부터 풍경 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저도 책에 나오는 것 처럼 예쁘게 풍경 사진을 찍고 싶은데;;
역광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ㅜㅠ
언젠가는 예쁜 풍경 사진을 찍고 싶어요.
이 건물은 약사전이예요.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대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다 비슷비슷 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죠 ㅜㅠ
어느 절에나 있듯 석가상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지요.
이 상은 약사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던 향로전에서 찍은 사진 같아요.
건물이 다른 것에 비해서 조그맣고 새 것 같았는데 아닌가 =_=;;
기억이 가물가물 ㅜㅠ 틀린것 같아요;;
화단을 만든 울타리가 특이해서 찍어보았어요.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로 만들어놨는데;;
사진으로 보니 별거 없어 보이네요;;
실제로 보면 이색적이고 예쁜데 ㅜㅠ
역시 사람의 눈이 젤 좋은 카메라라는 것이 맞는 말인가봐요.
우리나라 절에 가면 소원 비는 기왓장들이 있지요.
일본 여행 갔을 때도 이런 게 있었는뎅 ㅋㅋ(기왓장은 아니었지만;;)
근데 기왓장이 더 비싸고 처리하기도 더 힘들 것 같아요.
대부분이 가족의 건강 모 이런 소원을 빌지요;
저는 그냥 왔어요;;
신을 안 믿다 보니까 이런걸 잘 안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재미이긴 한데;;
메인 건물 대웅전이예요.
다른 건물에 비해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네요.
이것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예요.
전등사를 내려오다가 입구에서 모여있는 가이드 아저씨의 말을 귀동냥 해서 들었는데,
대웅전에는 나부상이라는 상에 관한 전설이 있대요.
가이드 아저씨가 어찌나 재밌게 말을 하시던지, 기억에 남아요ㅋㅋ
이 건물은 대조루 라고 불리는 건물이예요.
누각 형태이긴 하지만 풍경을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서점 형태의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쓰이는 것 같더라구요.
기념품 사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들어가보지 않았어요.
이 건물도 인천 문화재로 지정 되어있는 것 같았어요.
나름대로 문화재예요. ㅋㅋ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다 보면 이런 간판의 전통 찻집이 있어요.
요즘 사찰에 가본지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저는 절에 찻집이 있는 걸 처음 본 것 같아요.
간판에 있는 "참 좋은 인연입니다." 라는 말이 참 좋더라구요.
제가 차를 좋아했다면 여기서 차 한 잔 했을 것 같아요.
입구에는 나무로 조각한 두루미(?) 인지 학(?)인지 잘 모르는 새가 반겨주고 있어요.
이 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있는데,
사진을 직으니까 이상하게 나와서 ㅜㅠ
조그마한 장승도 이렇게 반겨주고 있어요 ^_^
요즘은 여기저기 장승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찻집 마당의 모습만 살짝 담아봤어요.
날씨 좋은날 이런 곳에서 차한잔 하면 좋을 듯 해요. ^_^
큰 은행나무예요.
오래되어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인데,,
생긴 모양이 험한 바람과 세월을 이겨내느라 힘들었을 듯한 모양이예요.
이 문은 전등사의 남문이예요.
저희는 들어갈때는 동문, 나올때는 남문으로 나와서 사진은 뒷모습이 먼저네요. ㅋㅋ
앞모습은 이렇게 생겼어요 ^_^
보통의 경우 이 쪽으로 많이 오겠죠..
주차장이랑 연결되어 있는 문이라;;
지은지 얼마 안된 것 처럼 생겼어요. ^_^
사진으로 얼핏 성곽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이게 삼랑성이라고 하는 곳인뎁;; 국가 사적이랍니다.
세월로 인해서 많이 낡은 모습이예요.
아마도 우리가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이렇게 전등사 여행을 끝내고 저희는 픽업해서 펜션으로 향했답니다.
펜션 포스팅도 조만간 할께요. ^_^
대하가 먹고 싶어서 이전부터 오빠를 졸랐는데 드디어 가게 되었지요 +_+
펜션에 가기 전 근처에 있던 전등사에 들렀어요.
* 전등사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화전호 : 032-937-0125
홈페이지 : http://www.jeondeungsa.org
입장료 : \2,000(성인) / \1,300(청소년) / \1,000(어린이)
+ 교통편
● 전등사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매표소가 산 위에 있어서 주차장에서 꽤 많이 올라가야 해요.
저희가 갔을 때는 날씨가 그닥 좋지 않아서;; 대략 난감;;
저희는 정문으로 안가고 다른 문으로 올라갔어요.
올라가는 내내 안내판이 없어서 불안불안 했는데, 올라가다가 매표소 입구 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서 같이 올라가서 안헤매고 잘 다녀왔어요.
대부분의 표지판이 이렇게 나와 있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ㅋㅋ
이 것을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대요.
그래서 오빠는 이걸 돌려보더라구요. ㅋ
저는 모 종교를 안믿으니까,, 그냥 말았어요 ㅋㅋ
● 전등사 윤장대(輪藏臺)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이에 전등사에서는 사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한번 뒤돌아보고, 희망하는 소원이 하루속히 성취 되도록 하기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 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聖物)을 조성하였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이에 전등사에서는 사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한번 뒤돌아보고, 희망하는 소원이 하루속히 성취 되도록 하기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 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聖物)을 조성하였다.
대웅전과 약사전, 범종 등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그 맞은편에 의자가 있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자판기도 있어요. ^_^ 근처에 화장실도 있어서 손씻기도 편하공 ㅋㅋ
점심은 도시락을 싸갔어요.
이 도시락을 싸느라 조금 늦게 출발하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 싸주는 도시락이라 오빠가 좋아했어요.
메뉴는 고구마 경단 ㅋㅋ
만드는 방법은 지식인에 물어봤답니다 ^_^
스님들이 살려고 만드는건지, 아님 템플스테이 하려고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갔을 때는 한창 공사중이었어요.
짓는건지 유지보수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못들어가는 곳이었어요. ㅜㅠ
그치만 담장 색깔이 예뻐요.
저희는 음료수를 점심 먹으면서 먹어서 물은 안먹었는데,,
소원비는 동전을 던저봤어요 ㅋ
큰 돌 가운데 접시 같이 있는데 그 곳에 동전을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나봐요 ㅋㅋ
10원짜리가 마침 4개 있길래;; 오빠랑 2개씩 나눠서 넣기로 했는데,
저만 1개 들어갔어요. +_+
근데 소원을 안빌어서 안이루어지나봐요. ㅋㅋㅋ
이럴 줄 알았으면 취업 잘 되게 해달라 비는건데;;
이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모든 문화재가 그렇듯 가까이서 볼 수는 없어요. ㅜㅠ
모라모라 조각되어 있을텐데 모라고 써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_=;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까 왜 제가 찍은 사진과는 다른 모습인지 모르겠어요;;
아마 사진을 잘못 찍었나;; =_=;;
대략 난감;; ㅜㅠ
● 전등사 범종
일제시대 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중국종의 모습을 한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종으로 한국의 종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려서 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은 없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를 돌려가며 나열하고,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이 정사각형사이에는 명문을 새겼는데, 이 명문으로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 곧 고려 숙종 2년(1097)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종의 형태가 웅장하고 소리가 청아하며 중국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일제시대 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중국종의 모습을 한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종으로 한국의 종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려서 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은 없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를 돌려가며 나열하고,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이 정사각형사이에는 명문을 새겼는데, 이 명문으로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 곧 고려 숙종 2년(1097)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종의 형태가 웅장하고 소리가 청아하며 중국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다른 절에서는 못 본것 같은데;; (하긴; 워낙에 어디 가본지 오래 되서 =_=;)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귀엽네요. ^_^
차안에 다는 흔들이도 있어요 ㅋㅋ
절에는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 하게 생겼는뎁;; =_=;;
전 대웅전이 젤 중요하단 것 밖에 잘 모르겠어요;;
이 건물은 직접 들어갈 수 있는데, 저는 무교라서 패스 했어요;;
제가 막 들어가서 시끄럽게 떠들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ㅋㅋ
● 전등사 명부전
약사전 옆의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도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는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다.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른다. 이 전각은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극락을 가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노라는 원을 세운 보살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녹색의 머리를 깎고 주장자를 짚은 채 지옥 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처럼 명부전에는 부처님 원력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사의 공덕으로 극락을 가라는 정성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약사전 옆의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도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는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다.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른다. 이 전각은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극락을 가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노라는 원을 세운 보살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녹색의 머리를 깎고 주장자를 짚은 채 지옥 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처럼 명부전에는 부처님 원력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사의 공덕으로 극락을 가라는 정성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저도 책에 나오는 것 처럼 예쁘게 풍경 사진을 찍고 싶은데;;
역광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ㅜㅠ
언젠가는 예쁜 풍경 사진을 찍고 싶어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다 비슷비슷 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죠 ㅜㅠ
● 전등사 약사전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이 상은 약사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던 향로전에서 찍은 사진 같아요.
건물이 다른 것에 비해서 조그맣고 새 것 같았는데 아닌가 =_=;;
기억이 가물가물 ㅜㅠ 틀린것 같아요;;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로 만들어놨는데;;
사진으로 보니 별거 없어 보이네요;;
실제로 보면 이색적이고 예쁜데 ㅜㅠ
역시 사람의 눈이 젤 좋은 카메라라는 것이 맞는 말인가봐요.
일본 여행 갔을 때도 이런 게 있었는뎅 ㅋㅋ(기왓장은 아니었지만;;)
근데 기왓장이 더 비싸고 처리하기도 더 힘들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왔어요;;
신을 안 믿다 보니까 이런걸 잘 안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재미이긴 한데;;
다른 건물에 비해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네요.
이것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예요.
전등사를 내려오다가 입구에서 모여있는 가이드 아저씨의 말을 귀동냥 해서 들었는데,
대웅전에는 나부상이라는 상에 관한 전설이 있대요.
가이드 아저씨가 어찌나 재밌게 말을 하시던지, 기억에 남아요ㅋㅋ
+ 전등사 나부상의 전설
● 전등사 대웅보전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누각 형태이긴 하지만 풍경을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서점 형태의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쓰이는 것 같더라구요.
기념품 사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들어가보지 않았어요.
이 건물도 인천 문화재로 지정 되어있는 것 같았어요.
나름대로 문화재예요. ㅋㅋ
● 전등사 대조루
전등사의 남동쪽으로는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조루에는 1726년 영조 임금이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서 썼다는 ‘취향당’이라는 편액을 비롯해 추사가 쓴 ‘다로경권’ 등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전등사의 남동쪽으로는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조루에는 1726년 영조 임금이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서 썼다는 ‘취향당’이라는 편액을 비롯해 추사가 쓴 ‘다로경권’ 등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요즘 사찰에 가본지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저는 절에 찻집이 있는 걸 처음 본 것 같아요.
간판에 있는 "참 좋은 인연입니다." 라는 말이 참 좋더라구요.
제가 차를 좋아했다면 여기서 차 한 잔 했을 것 같아요.
이 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있는데,
사진을 직으니까 이상하게 나와서 ㅜㅠ
요즘은 여기저기 장승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날씨 좋은날 이런 곳에서 차한잔 하면 좋을 듯 해요. ^_^
오래되어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인데,,
생긴 모양이 험한 바람과 세월을 이겨내느라 힘들었을 듯한 모양이예요.
저희는 들어갈때는 동문, 나올때는 남문으로 나와서 사진은 뒷모습이 먼저네요. ㅋㅋ
보통의 경우 이 쪽으로 많이 오겠죠..
주차장이랑 연결되어 있는 문이라;;
지은지 얼마 안된 것 처럼 생겼어요. ^_^
이게 삼랑성이라고 하는 곳인뎁;; 국가 사적이랍니다.
세월로 인해서 많이 낡은 모습이예요.
아마도 우리가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 삼랑성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은 고대 토성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부우·부소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토성 자리에 표면이 거친 할석(割石)으로 성을 쌓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은 성 안팎을 할석으로 겹축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를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성벽이 꺾어 도는 곳마다 10여 개의 곡성을 이루며,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치성(雉城)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은 고대 토성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부우·부소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토성 자리에 표면이 거친 할석(割石)으로 성을 쌓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은 성 안팎을 할석으로 겹축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를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성벽이 꺾어 도는 곳마다 10여 개의 곡성을 이루며,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치성(雉城)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전등사 여행을 끝내고 저희는 픽업해서 펜션으로 향했답니다.
펜션 포스팅도 조만간 할께요. ^_^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 전등사
글을 잘쓰시나봐요 저도 여기 갔다왔는데...









